이익의 개념이 달라지다!
2024/06/09
오 윤 희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많이 고심하지만, 결국에는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결정하게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형을 확정짓는 최종판결을 내렸던 당시 로마 총독
빌라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유대인의 자치기구인 산헤드린 공회는 여러가지 혐의를 붙여서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왔습니다. 혐의 내용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해 보았지만, 로마의 형법상 예수에게 죄를 물을 수 없음을 그는 단박에 알았습니다. 사실, 이 상황의 내막에 대해서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질투하여 죽이려고
한다는 것도, 몰려온 군중이 그들에게 주도되고 있다는 것도 말이지요.
그 때, 모인 군중이 명절에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죄수 한 명을 방면해 주는
전례를 빌라도에게 요청하게 됩니다. 예수를 방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던 빌라도는 명절 전례를 요구하는 군중에게 “예수를 놓아주기 원하느냐?”라고 먼저 말을 꺼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의 사주를 받던 군중은 바라바라는 사람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군중은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해라고 외치기 시작합니다. 그 때, 빌라도는 예수가 십자가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지 않았노라고 말하지만, 상황은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를 방면하고
예수의 십자가형을 확정하고 맙니다.
빌라도에게 있어서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라는 설명은 “남은 총독 임기를 보장받고자 하여”라고
해석됩니다. 이 말은 분명 무죄임을 알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유죄선고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사실, 우리도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도 결국에는 내 이익을 쫓아 결정하고 선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한가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인
나에게 이익이라는 개념은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자기의 이익이라고 선언합니다. 네, 맞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이익이란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이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된
나는 완전히 달라진 이익에 따라서 선택하고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익이라는 개념은 과연
무엇인가요?